aisos
스페인 사회의 기사소설 본문
기사소설에는 사람들이 꿈꾸며 이상으로 삼던 기사의 모습과 모험담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당시 스페인 사회 역시 신대륙의 발견과 유럽에서의 세력 확장 등으로 이상과 희망으로 가득 부풀어 있었기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더 불어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65) 전기순, “기사소설 『아마디스 데 가을라 Amadís de Gaula』의 사회사적 의미”, 『외국문학연구』 제25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7. 2. 234쪽 66) 박철, 『서반아 문학사 상』, 송산출판사, 1992, 193쪽 - 44 - Pronto la risa, larga la mano, bailando de curiosidad los ojos, vuelve Miguel con su familia a Madrid: maleta no tiene, pero en las faltriqueras lleva lo que ha menester. ¿Sabéis lo que es? Un Amadís de Gaula y una Diana de Jorge de Montemayor; ¿supondréis temerariamente si os imagináis que entre las hojas de estos dos libros no hay pedazos de papel escriborreados de versos y ennoblecidos por tales o cuales declaraciones amorosas donde los viejos conceptos de Platón aparecen alambicados en señoriles endecasílabos de acentuación imperativa y dura?67) 성급한 웃음, 민첩한 손, 호기심으로 흔들리는 눈으로 미겔 은 가족과 함께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가방은 없었지만, 주머 니에는 필요한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마디스 데 가울라』한 권과 호르헤 데 몬테마요르의『디 아나』한 권이었다. 이 두 권의 책 가운데 강압적이고 딱딱한 악센트의 당당한 11음절 시구에서 드러나는 플라톤의 오래된 개념에 의해 쓰인 고귀한 시들로 이루어진 종이 한 장 없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이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청년기에 그의 가족이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왔 을 때의 모습을 프란시스코 나바로가 묘사한 부분이다. 세르반테스 역시 당시 의 기사소설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 시 그의 손에 들려있었던 그 『아마디스 데 가울라』등의 수많은 기사소설을 그 역시 많이 읽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작품 『돈키호테』를 보면 확인할 67) Francisco Navarro, op, cit., p.36 - 45 - 수 있다. 그는 『돈키호테』1권 6장에서 돈 키호테의 출정을 반대하고 우려하 는 신부와 이발사가 이 사건의 원인을 기사소설에 돌리며 수많은 기사소설의 이름을 나열하고 평가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으로 세르반테스 역시 많은 작품을 읽은 기사소설의 독자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집필할 당시는 이미 스페인에서조차 기사소설의 인기가 하락했던 시기이다. 그 시대는 이제 더 이상 기사소설의 시대가 아니었다. 앞의 Ⅱ장에서 설명했듯이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몰락의 길 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 역시 지나간 영광의 환상에서 벗어나 고달픈 삶을 직 면하게 되었다. 그러한 시대에 환상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사소설이라는 장르는 더 이상 그 매력을 발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몰락한 현실 그리고 이상과 동떨어진, 희망을 잃은 자신들의 삶을 바라보며 그들과 비슷한 모습의 주인공들이 사회와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피카레스크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사소설은 이미 과거의 장르가 된 이 시기에 세르반테스는 왜 기사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을까? 그 대답은 바로 ‘패러디’이다. 세르반테스는 과거의 기사소설을 되살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기사소설을 패러디하여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나간 것이다. ‘패러디’는 상호텍스트성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패러디를 통해 창작된 작품 은 리얼리티가 아닌 기존의 텍스트를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패러디 는 모더니즘 시대부터 예술의 표현에 있어서 중점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패 러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술의 한 가운데에 존재했다. 많은 예술가들은 오 래전부터 기존에 존재하는 예술 작품들을 자신들의 소재로 삼아왔다. 그것은 같은 장르일 수도 있고, 다른 장르가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작품들이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것도 일종의 패러디인 것이다. 스탬은 패러디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의식적 예술의 재료는 전통 그 자체이므로 - 언급하고 - 46 - 가지고 놀고 극복하고 추방하기도 하는 - 종종 패러디는 결 정적인 중요성을 지녀 왔다. 패러디라는 개념에는 예술 과정 에 대한 몇몇 자명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다. 그 첫 번째가 예술가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텍스트들을 모 방한다는 진리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다른 그림들을 보아 왔고, 다른 소 설들을 읽어 왔고, 다른 영화들을 관람해 왔기 때문이다. 사 람들은 자신이 읽었던 소설가들을 모방하여 - 애정 어린 모 방이건 비판적인 패러디이건 - 소설을 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이란 세계를 향한 창문이 아니라 여러 번 지워 쓸 수 있지만 흔적은 희미하게 남은 양피지와 같은 것으로서, 다른 텍스트에 대한 언급이 행간 속을 떠돌거나 여백 주위를 서 성거리는 텍스트 교류적인 행사이다.68) 예술의 재료가 리얼리티가 아니라 이전 예술가들에 의해 창작된, 오랜 시간 을 걸쳐 습득된 또 다른 텍스트라는 생각은 바로 자기반영성의 대표적인 모습 이다. 패러디에서의 모방이란 단순한 텍스트의 옮김이 아니다. 패러디되는 텍스트 와 패러디하는 텍스트의 관계로 인해 비집고 나오는 비판적 유머나 동경이 독 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패러디의 정의와 관련해 린다 허치언(Lunda Hutcheon)은 패러디되고 배경이 된 텍스트와 새롭게 병합된 텍스트 간의 비 평적 거리로 인해 생성된 아이러니가 그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69) 패러디는 반복이지만 차이를 내포한 반복이다. 이는 비평적 68) 로버트 스탬, 앞의 책, 194쪽 69) 린다 허치언, 『패러디 이론』, 김상구 외 역, 문예출판사, 1992, 55-56쪽 - 47 - 아이러니의 거리를 가진 모방이며 그 아이러니는 양쪽이 모두 차단될 수 있다. ‘초맥락성’의 아이러니와 전도는 패러디의 중 요한 형식적 작동이다. 또한 실용적 정신의 범주는 경멸에 찬 조롱으로부터 경외심에 찬 경의에 이른다.70) 패러디는 차이를 내포한 반복이기에 단순한 모방 그 이상의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기존의 작품을 원하는 방향으로 비틀고 뒤집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허치언은 이것이 텍스트의 기호화라고 말하고 있다. 패러디, 즉 텍스트를 기호화하여 그 해독의 역할을 독자에게 던져주는 것이다.71) 이렇게 패러디를 기호학적으로 보는 예로 지바 벤-포라(Ziva Ben-Porar)의 패러디에 관한 정의를 들고 있다.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나 다른 예술적 대상을 가정적으로 재 현하는 것으로 보통 코믹하다. - ‘전형화 된 본질’의 재현, 다 시 말해서 패러디는 이미 최초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재현으 로 기정화 된 하나의 전형화 된 ‘본질’의 재현이다. 패러디 적 재현은 모델의 관행을 드러내고 같은 메시지 안에 두 개의 기 호를 공존시킴으로써 그 책략을 드러낸다.72) 세르반테스는 패러디의 형태를 갖고 내러티브의 소재로 그들이 목격했던 역 사나 숭배했던 영웅 등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기사소설이라는 텍스트 자체를 선택했다. 이렇게 『돈키호테』는 그 출발에서부터 자기반영적 모습을 지니고 70) 위의 책, 62-63쪽 71) 위의 책, 137-162쪽 72) 위의 책, 82쪽에서 재인용 - 48 - 시작한 것이다. 앞서 패러디란 기존의 텍스트를 기호화하여 독자가 그것을 해독하는 것이라 고 했다. 그 패러디된 기호를 이해하고, 해독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은 독자들 이 그 작품을 알아야만 한다. 그 작품 혹은 장르의 관습적인 면에 익숙해야만 사람들은 패러디된 작품 속에서 모순을 발견하여 비로소 작가가 의도한 웃음 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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