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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소설과 기타 문학에 대한 비평, 돈키호테 전반에 걸쳐 나타나 본문

스페인어문학, 올라!

기사소설과 기타 문학에 대한 비평, 돈키호테 전반에 걸쳐 나타나

③㎍ 2020. 9. 2. 19:00

이런 기사소설과 기타 문학에 대한 비평은 『돈키호테』전반에 걸쳐 나타난 다.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돈 키호테는 자신의 광기어린 짓을 멈추게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 갇혀 집으로 돌아오면서 교회법 연구원과 마주치게 된 다. 교회법 연구원은 신부 그리고 돈 키호테와 함께 기사소설 그리고 연극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세르반테스는 기사소설과 연극, 즉 문학에 대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법 연구 원은 기사소설에 대해 신부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63 - -Verdadermente, señor cura, yo hallo por mi cuenta que son perjudiciales en la república estos que llaman libros de caballerías; y aunque he leído, llevado de un ocioso y falso gusto, casi el principio de todos los más que hay impresos, jamás me he podido acomodar a leer ninguno del principio al cabo, porque me parece que, cuál más, cuál menos, todos ellos son una mesma cosa, y no tiene más éste que aquél, ni estotro que el otro. Y según a mí me parece, este género de escritura y composición cae debajo de aquel de las fábulas que llaman milesias, que son cuentos disparatados, que atienden solamente a deleitar, y no a enseñar: al contrario de lo que hacen las fábulas apólogas, que deleitan y enseñan juntamente.(Ⅰ, p.564) “신부님, 정말로 기사소설이라 불리는 이것들이 공화국에 해 악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비록 제가 취미로 그리고 거짓된 취 향으로 인쇄된 모든 책들의 처음을 읽기는 했지만 결코 처음 부터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더하거나 덜한 것도 없이 모두들 같은 이야기이고, 이것이 저것보다 더하지도 다른 것보다 더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 생각으로 는 이런 종류의 저작물과 작품은 밀레시아라 불리는 우화의 저 아래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로 단 지 즐거움만 주고 배움은 없는 것이지요. 즐거움과 배움을 함 께 주는 우화와는 반대로 말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기사소설을 강력히 비판한 세르반테스는 우화와 비 - 64 - 교하며 그 해악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기사소설에 대한 비판에 서 멈추지 않고 연극으로 옮겨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교회법 연구원 의 입을 빌어 연극에 대해 비판을 하는 그에게 있어서 당대의 연극은 한심한 기사소설만큼이나 설득력이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완벽하게 현실을 재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Pero lo que más me le quitó de las manos, y aun del pensamiento, de acabarle, fue un argumento que hice conmigo mesmo, sacado de las comedias que ahora se representan, diciendo: «Si estas que ahora se usan, así las imaginadas como las de historia, todas o las más son conocidos disparates y cosas que no llevan pies ni cabeza, y, con todo eso, el vulgo las oye con gusto, y las tiene y las aprueba por buenas, estando tan lejos de serlo, y los autores que las componen y los actores que las representan dicen que así han de ser, porque así las quiere el vulgo, y no de otra manera, y que las que llevan traza y siguen la fábula como el arte pide, no sirven sino para cuatro discretos que las entienden, y todos los demás se quedan ayunos de entender su artificio, y que a ellos les está mejor ganar de comer con los muchos, que no opinión con los pocos, deste modo vendrá a ser un libro, al cabo de haberme quemado las cejas por guardar los preceptos referidos, y vendré a ser el sastre del cantillo.»(Ⅰ, p.568) 그러나 가장 제가 거기에서 손을 떼고 그것을 마치려는 생 - 65 - 각조차 빼앗아 버린 것은 요즘 공연되고 있는 연극들에 대해 제 자신과 벌였던 토론이었습니다. 전 이렇게 말했죠. ‘만약 요즘 공연되는 연극들, 역사에 대한 연극만큼이나 상상의 연극 들, 모든 연극들이 발도 머리도 없는 엉터리라는 것이 알려진 다면 속세의 사람은 그것들을 즐겁게 듣고, 좋게 받아들이지. 속인과는 거리를 둔 채 말이야. 연극을 만드는 작가들과 공연 을 하는 배우들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어. 왜냐 하면 속인들은 그런 연극들을 원하니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 이라고. 그리고 재치 있고 예술이 요구하는 것과 같이 우화를 따르는 연극들은 그것을 이해하는 분별 있는 네 명 정도의 소 수의 사람들에게나 받아들여지고 나머지는 모두들 그 기교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그들에게는 적은 사람의 의견보다 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먹을 돈을 버는 것이 나은 것이야. 언급 한 규율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기를 쓰고 공부한다 해도 이 런 식으로 책은 이루어질 것이고, 나는 쓸데없이 바느질이나 하는 재단사처럼 되겠지.’ 여러 작품들을 비평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2권 에서 1권을 계속 언급하면서 독자가 지금 읽고 있는 작품을 직접 작품 안에 서 만나게까지 한다. 2권 2장에서 산초는 돈 키호테에게 자신들이 주인공인 소설 『돈키호테』1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anoche llegó el hijo de Bartolomé Carrasco, que viene de estudiar de Salamanca, hecho bachiller, y yéndole yo a dar la bienvenida, me dijo que andaba ya en libros la historia de vuestra merced, con nombre de El Ingenio - 66 -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 y dice que me mientan a mí en ella con mi mesmo nombre de Sancho Panza, y a la señora Dulcinea del Toboso, con otras cosas que pasamos nosotros a solas, que me hice cruces de espantado cómo las pudo saber el historiador que las escribió.(Ⅱ, p.39) 어제 살라망카에서 학사가 되어 공부하고 돌아온 바르톨로 메 카라스코의 아들이 도착했어요. 그래서 제가 환영해주려고 갔었는데, 그가 제게 말하기를 나리에 대한 이야기가 『재치 있는 시골귀족 돈 키호테 델 라 만차』라는 제목으로 이미 돌 아다니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말하기를 그 이야기 속에서 저는 제 이름인 산초 판사로, 그리고 둘시네아 델 토보소 아가 씨 이름도 거론된다는 겁니다. 우리 둘만이 겪은 다른 일들과 함께 말이지요. 제가 놀라 성호를 다 긋게 되는 것은 그 역사 학자가 어떻게 그 일들을 알아서 쓸 수가 있었냐는 거지요.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모험을 계속하면서 마주치는 등장인물이자 작품 내 부의 독자들도 그들을 알아보고 소설 『돈키호테』를 언급한다. Decidme, hermano escudero: este vuestro señor no es uno de quien anda impresa una historia que se llama de El Ingenioso Higalgo don Quijote de la Mancha, que tiene por señora de su alma a una tal Dulcinea del Toboso?(Ⅱ, p.293) - 67 - 말씀해보세요, 하인양반. 이 당신의 주인인 분이 『재치 있 는 시골 귀족 돈 키호테 델 라 만차』라고 불리는 인쇄되어 돌아다니는 그 이야기에 나오는 분이 아니신가요? 자신의 영 혼의 여인으로 둘시네아 델 토보소를 모시고 있는 분 말입니 다. 이렇게 『돈키호테』2권에서 돈 키호테와 산초 그리고 둘시네아 델 토보소 등은 작품 속의 실존인물임과 동시에 기존에 출판된 『돈키호테』1권의 등장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실재함과 동시에 허구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혼동하기 시작하게 된다. 어디부터가 리얼리티이고, 어디까 지가 허구인지 구분을 하기가 힘들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로버트 스탬 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술과 삶의 혼동을 세르반테스적으로 다룬 허구에서는 종 종 존재적 차원이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난잡하게 뒤섞이기 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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