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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서적상 그리고 판권 본문

스페인어문학, 올라!

작가와 서적상 그리고 판권

③㎍ 2020. 9. 5. 21:00

이런 대화로 미루어보아 독자들은 당시 어떤 방식으로 혹은 대략 어떤 가격 으로 작가와 서적상이 판권을 사고 팔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책을 사고 판 다는 것은 책이라는 문학 작품 역시 생산 과정에 의해 생산된 생산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로버트 스탬은 이렇게 창작과 관련된 기술적 및 미 학적 과정을 취급한, 자기반영성을 간직하고 있는 소설들의 미덕은 “독자나 관객들에게 문학이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창조되고, 복잡한 상업적 및 문학 적 장치에 의해 전달되는 생산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78)라고 말하고 있다. 리얼리즘의 환영성을 지닌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환영성을 유지 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으로 생산품으로서의 작품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들 에게 작품은 완성된 또 하나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과정을 모두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작품 안에서 보여주는 자기반영적인 작품들은 스스로의 생성 과정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읽는 작품이 또 하나의 완성 78) 로버트 스탬, 앞의 책, 117쪽 - 88 - 된 리얼리티가 아닌 작가의 손에 의해 생산된 인공적 생산품이라는 사실을 인 식하게 된다. 3. 독자와 작가의 대화 전통적인 소설은 소설의 짜여 진 이음새, 즉 그것이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물이라는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반영적 소설은 소설의 이 음새를 고의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인공물로서의 소설의 모습을 강조한다. 여기 서 이음새를 드러내는 방법이 바로 흐름의 차단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내 러티브를 중간에 고의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서 함께 흐르 던 독자의 의식도 차단된다.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의식적으로 차단함 으로써 작품에 대한 비판 의식 없이 리얼리즘의 환영성을 받아들이던 독자들 은 주의를 환기하여 자율적 의식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와 같 은 방식을 사용하면서 예술에 자율성을 부과하고 루카치의 리얼리즘에서 벗어 나고자 소격효과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환영을 파괴했다. 세르반테스 역시 이 러한 차단의 방법을 사용하여 내용을 단절시킴으로써 내러티브의 이음새를 두 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의 완전한 환영”을 전달하려면 작가들은 “능숙하고 표시 나지 않게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시사하였던 드 모파상의 환영주의적 이상’79)을 전면으로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차단의 방법으로 화자의 목소리를 이용한 독자와의 대화를 선 택하고 있다. 화자는 내러티브를 이어가는 도중 갑작스럽게 그 이야기를 읽고 있던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냥 단순히 ‘이야기가 끝났음’ 혹은 ‘이야기가 시작됨’이라고 접합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가야 하는 방식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독자들은 내러티브의 흐 79) 위의 책, 203쪽에서 재인용 - 89 - 름이 아니라 이렇게 화자의 지시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화자의 뒤에 숨어 서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며 내러티브를 창조 해내는 리얼리즘의 작가와는 반대로 세르반테스는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 와 직접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돈키호테』1부 8장에서 돈 키호테가 비스카야인과 싸움을 하던 도중 그 들이 칼을 하늘로 치켜들었는데 갑자기 작가는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만다. Pero está el daño de todo esto que en este punto y término deja pendiente el autor desta historia esta batalla, disculpándose que no halló más escrito, destas hazañas de don Quijote, de las que deja referidas. Bien es verdad que el segundo autor desta obra no quiso creer que tan curiosa historia estuviese entregada a las leyes del olvido, ni que hubiesen sido tan poco curiosos los ingenios de la Mancha, que no tuviesen en sus archivos o en sus escritorios algunos papeles que deste famoso caballero tratasen; y así, con esta imaginación, no se desesperó de hallar el fin desta apacible historia, el cual, siéndole el cielo favorable, le halló del modo que se contará en la segunda parte.(Ⅰ, pp.137-138)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시점에서 작가는 이 전투 이야기 를 중단한 채 끝냈다는 것이다. 그는 돈 키호테의 이 무훈에 대해 위에서 언급된 것 이외에 더 많은 글을 찾을 수 없었다 고 변명했다. 사실 이 작품의 두 번째 작가는 그렇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망각의 법칙에 넘겨졌고, 라 만차의 재 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호기심이 없으리라고 믿고 싶지 않 - 90 - 았고, 그 유명한 기사에 대해 다룬 문서들이 그들의 옛 기록에 나 책상에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 평온한 이야기의 끝을 찾아내는 것에 절망하지 않았는데, 그의 편이었던 하늘 덕에 그는 2부에서 이야기할 방법으로 그 결말을 발견했다. 이렇게 전투를 정지된 프레임 상태로 멈추어 둔 채 세르반테스는 두 번째 작가가 내러티브를 이어갈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를 두 번째 작가라 칭하면서 내러티브를 단절시켜 독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지 금까지 읽어왔던 이야기가 리얼리티를 묘사한 것이 아닌 첫 번째 작가에 의해 창작된 창작물을 두 번째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들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차단에 의한 환영의 파괴로 독자는 내러티브의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작가의 펜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시선 의 뒤에 숨어있던 카메라를 발견하여 환영에서 깨어나 자신들이 보고 있던 것 이 영화라는 허구임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즉, 자신이 읽고, 보고 있는 작 품의 작위성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스탬이 말하는 자기반영적 예술 가의 전형적인 태도로 ‘자기 반영적 예술가는 스스로를 자연의 노예가 아니라 허구의 주인으로 간주하며, 모사적 예술이 지닌 중심 가정, 즉 예술 텍스트는 기존의 현실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에 회의를 던지는’80) 것이다. 어쩌면 세르반테스는 문학이 리얼리티를 완벽히 재현하지 못한다는 회의를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한 리얼리티는 환영에 휩싸인 독 자 혹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속에서 연극 을 보던 돈 키호테의 반응을 통해 이런 생각을 보여준다. 객줏집에서 페드로 선생이 공연하는 연극을 보던 돈 키호테는 불완전한 리얼리티의 재현에 불만 을 품고 이의를 제기한다. 80) 로버트 스탬, 앞의 책, 189쪽 - 91 - -¡Eso no! -dijo a esta sazón don Quijote-. En esto de las campanas anda muy impropio maese Pedro, porque entre moros no se usan campanas, sino atabales, y un género de dulzainas que parecen nuestras chirimías; y esto de sonar campanas en Sansueña sin duda que es un gran disparate. Lo cual oído por maese Pedro, cesó el tocar, y dijo: -No mire vuesa merced en niñerías, señor don Quijote, ni quiera llevar las cosas tan por el cabo, que no se le halle. ¿No se representan por ahí, casi de ordinario, mil comedias llenas de mil impropiedades y disparates, y, con todo eso, corren felicísimamente su carrera, y se escuchan, no sólo con aplauso, sin con admiración y todo? Prosique muchacho, y deja decir; que como yo llene mi talego, siquiera represente más impropiedades que tiene átomos el sol.(Ⅱ, p.261) “그건 아니야!” 이 때 돈 키호테가 말했다. “이 종에 관한 부분은 페드로 선생이 부적절하게 한 것이오. 무어인들은 종을 사용하지 않고 큰 북을 사용하오. 그리고 우리의 치리미아처럼 생긴 나팔피리 종류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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