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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창작해 낸 하나의 생산품으로서 소설 본문
소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신에 의해 창작된 또 하나의 실재가 아니라 작가가 창작해 낸 하나의 생산품으로서 독자에게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자기반영적 모습은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나타난다. 우 선 작가들은 ‘차단’의 방법을 사용해 내러티브를 단절시킨다.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내러티브가 리얼리즘의 목표였다면 자기반영성의 목표는 차 단을 사용하여 독자의 의식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다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상호텍스트성이다. 반리얼리즘 작가들은 더 이상 독창적인 창조물로서의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이전에 존재하던 텍스트들을 고쳐 쓰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렇 게 상호텍스트성은 소설이 기존의 다른 텍스트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이끌 어 나가는 것이다. 자기반영적 작품들은 텍스트들의 상호교류를 전면으로 드 러낸다. 마지막으로 살펴보았던 자기반영성 이론은 메타픽션에 대한 것이다. 메타픽 션은 소설 속 소설의 창작 과정, 즉 작품의 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 다. 작가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읽 고 있는 작품 속의 내러티브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작품에 의해 재현된 리얼 리티가 아니라 언제든지 수정되고 삭제될 수 있는 인공적 생산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 107 - 이런 차단, 상호텍스트성 그리고 메타픽션 등의 자기반영적 모습이 필자가 다루고자 했던 『돈키호테』에 모두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돈키호테』의 자기반영적 모습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첫째는 패러디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패러디는 ‘더 이상 독창적인 작품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기법 으로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기존의 작품을 모방한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한 모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작품, 즉 하이퍼텍스트에 변 형을 가해 두 텍스트 사이에서 비집고 나오는 독특한 유머 혹은 작품에 대한 경외심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세르반테스는 기사소설을 패러디하면서 당시 사회적 가치와 주인공 돈 키호테 혹은 작가 자신의 이상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아버지 세대의 영광과 아들 세대의 좌절을 모두 맛본 인물이었다. 영광을 이어가지 못하는 당시 사회를 바라보면서 좌절감이 들었을 그는 자신이 느꼈던 회의를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이미 시대에 뒤처 진,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린) 기사소설과 그 기사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려 하 는 돈 키호테의 광기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소설 속 소설을 다루고 있는 『돈키호테』의 나르시시즘적 모 습을 살펴보았다. 이 부분들에서 세르반테스는 직접 다른 문학 작품들을 논평 함으로써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돈 키호테는 신부, 객줏집 주인, 교회법 연구원 등 다른 여러 등장인물들과 기사소설에 대한 열띤 논쟁 을 수차례 벌인다. 이 중에서도 1권 6장의 책에 대한 종교재판이야기는 본격 적으로 문학작품들에 대한 비평을 하는 부분으로 상호텍스트성을 가장 잘 보 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는 또한 『돈키호테』2권에서 1권에 대한 언급을 하고, 2권을 탄생하게 한 동기가 되었던 『돈키호테』의 위작에 대하여 다룸으로써 소설이라는 장르의 반영을 넘어 자신의 작품을 작품 안에 반영시키고 있다. 이런 상호텍스트성과 더불어 『돈키호테』는 메타픽션의 성 격을 잘 나타내는 소설 속 소설의 창작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발견된 필사본’의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작품 속 화자는 자신이 길거리에서 발견한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의 잡기장을 - 108 - 한 개종자에게 번역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 속에서 원작 자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작품을 써 나가는 과정 그리고 원작의 번역자가 작품을 번역하고 심지어 편집까지 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작품이 생성되어나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돈키호테』2권 62장에서 는 책이 인쇄소 안에서 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통되는 단계까지 언급함으로써 그는 인공적 생산품으로서의 소설의 위치를 독자들에게 보여준 다. 세 번째로는 세르반테스가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과 직접 대화를 하 는 부분들을 분류했다. 세르반테스는 독자들에게 화자를 통해 직접 말을 건네 거나 독서의 방향을 직접 지시함으로써 내러티브를 차단한다. 1권 8장에서는 비스카야인과 돈 키호테의 전투를 정지된 프레임으로 놓아둔 채 내러티브를 중단시킨다. 이 외에도 장의 끝부분에 화자가 개입하여 ‘이야기가 끝이 남’ 혹 은 ‘이야기가 다음 장에서 이어짐’등 이라고 말하며 장의 구분을 고의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사실상 내러티브의 흐름을 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필자가 지금까지 『돈 키호테』가 지니고 있는 자기반영성에 대하여 논하였으나 그것이 곧 『돈키호 테』가 반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분명히 전통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그 증거로 풍부한 내러티브와 역사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세르반테스의 입장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많 은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앞에서 논하였듯이 세르반테스는 내러티 브들을 차단함으로써 독자의 환영을 깨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필 요 혹은 미숙함으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차단은 장치일 뿐 세르반테스는 내 러티브 자체를 부인하거나 해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작품 속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작품을 높 이 평가하고 있다. 『돈키호테』의 등장인물들은 역사적 진정성을 바탕으로 기사소설을 논평한다. 1권 31장에서 객줏집 주인이 갖고 있는 많은 기사소설 을 신부가 평가하는 데 기준은 바로 그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신부의 입을 통해 사실, 즉 그들이 겪고 - 109 - 있는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작품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세르반테스는 산초 판사나 신부, 객줏집 주인 등 돈 키호테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묘사하여 그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닌 『돈키호테』는 분명 리얼리즘 소설인 것이다. 근대소설의 시초라 할 수 있는『돈키호테』는 위와 같이 소설의 본질이라 했던 리얼리즘적 성격과 현대적이고 전복적인 자기반영적 성격을 모두 내포하 고 있다. 필자는 17세기의 인물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의도를 지니고 자기반영 적 모습을 드러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돈키호테』에서는 분명 히 자기반영적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서 최상의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리얼 리즘과 자기반영성이 그 작품 안에 공존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의 출발점인 『돈키호테』로 미루어보아 소설 속 리얼리즘과 자기 반영성의 공존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최상의 내러티브를 창조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생성된 소설의 성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최초의 근대소설로서 『돈키호테』는 그 내부에 리얼리즘과 자기반 영성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결과가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에 기인한 것인지, 소설의 창세기 시절에 불가피하게 나타는 미숙함의 결과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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